여섯 황제의 해, 군인 황제 시대의 서막

여섯 황제의 해로 불리는 서기 238년은 단 한 해 동안 여섯 명의 황제가 로마를 다스렸던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정치적 혼란과 권력 다툼의 극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군인 황제 시대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로마의 황제 자리가 잦은 교체를 겪으면서 황제의 권위와 제국의 안정을 동시에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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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황제의 해

로마 제국의 위기와 황제 교체 서기 3세기 초반의 로마 제국은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군사적 원정과 국경 방어를 위한 자원의 소모로 재정이 악화되었고, 중앙 정부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지방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황제의 권위가 약해지자, 군대와 상원, 지방의 유력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황제 자리가 끊임없이 바뀌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황제들이 군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즉위하고, 로마 시민들뿐 아니라 원로원과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로마의 통치는 불안정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민중은 황제의 권위에 의문을 품었고, 권력 공백이 발생하자 여러 인물들이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혼란의 서막, 막시미누스 트락스

238년 로마 제국의 황제는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병사들의 지지를 받아 제위에 오른 군인 황제로, 폭력적이고 엄격한 통치 방식으로 유명했습니다. 막시미누스는 로마의 전통적인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닌 지방 농민 출신이었으며, 통치는 대중으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지 못하였으며, 높은 세금과 전쟁 부담으로 인해 많은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원로원은 막시미누스를 타도하고자 다른 인물을 황제로 옹립하게 됩니다.



고르디아누스 부자의 단명한 15일의 황제 생활

고르디아누스 1세와 고르디아누스 2세 부자는 북아프리카에서 막시미누스 트락스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키며 각각 황제로 추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통치는 짧았습니다. 특히 고르디아누스 2세는 막시미누스 트락스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목숨을 잃었고, 이로 인해 두 황제는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의 선택과 푸피에누스, 발비누스의 집권

고르디아누스 부자의 죽음 이후 로마 원로원은 더욱 큰 혼란을 막기 위해 두 명의 새로운 황제를 공동으로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로원의 지지를 받은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은 공동 통치라는 독특한 형태로 제국을 다스리게 되었지만, 서로의 정치적 배경과 지지 기반이 달랐기 때문에 협력보다는, 권력 다툼 등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막시미누스 트락스는 여전히 북쪽에서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고 있었고, 푸피에누스는 막시미누스의 군대를 저지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결국 막시미누스는 군대가 고갈되고 지쳐버린 상태에서 패배하며 살해되었지만,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의 권위는 이미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고르디아누스 3세와 잠시간의 안정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는 막시미누스 트락스의 위협을 물리쳤으나, 그들 사이의 불화로 인해 안정적인 통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두 황제는 폭도들에게 살해되었고, 이후 원로원은 고르디아누스 3세를 황제로 추대했습니다. 고르디아누스 3세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외손자로, 어린 나이 덕분에 원로원과 군대 모두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경험이 부족했으나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를 이루며 혼란스러운 제국을 잠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고르디아누스 3세의 통치 기간에는 사산 제국과의 전쟁이 있었으나 비교적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평화로운 시기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말기에 군대 내부의 반란이 발생하면서 고르디아누스 3세도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섯 황제들의 통치와 혼란의 연속

여섯 황제의 해에는 모두 짧은 시간 동안 황제 자리에 머물렀으며, 대부분 암살되거나 반란으로 인해 실각했습니다. 막센티누스는 폭정으로 인해 몰락했으며, 고르디아누스 1세와 2세는 전투의 패배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발비누스와 푸피에누스는 서로 다른 정당성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고, 결국 그들의 통치는 로마 내에서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르디아누스 3세가 어린 나이에 황제로 등극하며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습니다.



결론

서기 238년의 여섯 황제의 해는 로마 제국의 권력 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복잡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황제의 잦은 교체와 권력 다툼은 제국의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이는 로마 시민들로 하여금 황제라는 자리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군대의 지지를 기반으로 황제가 교체되는 상황은 로마가 더 이상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시사합니다. 이 혼란 속에서 비록 고르디아누스 3세가 잠시나마 제국의 안정을 되찾으려 했으나, 이후에도 로마 제국은 외세와의 전쟁, 경제적 위기, 그리고 내분으로 인해 지속적인 위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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